독서감상

행복한 삶이란?

I am a sojourner. 2024. 1. 30.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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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중심적으로 살면 행복할 것 같다. 그러나 결코 행복할 수가 없다. 온갖 쾌락을 추구하는 쾌락주의자들은 결국 허무주의에 도달하고 또 허무주의자들은 홋날 자살에 이르고 만다. 솔로몬이 모든 것을 다 해보고 내린 결론은 허무함이었다. 하나님의 뜻을 떠나 모든 것을 다 해본 결론은 무의미함이었다.

사람의 경험이나 이성에 비춰볼 때, 성경대로 사는 삶, 곧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삶이 무척 불행할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정작 말씀대로 순종하면서 살면 정말 행복하다. 이는 칸트의 주장처럼 윤리적인 삶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다. 솔로몬의 말처럼 사람의 본분을 따라서 사는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 역사 속에서 "사람의 행복이 곧 선이다."라는 생각을 품은 자들이 있었다. 바로 프랑스혁명을 일으켰던 혁명가들이었다. 당시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선이고, 불행하게 만들면 악이라는 이분법적 사고가 만연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을 불행하게 하는 사람들을 모조리 찾아서 죽였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아무도 행복해지 않았고 도리어 그들 조차도 단두대에서 처형을 당하는 끔찍한 불행에 빠지고 말았다.

"네가 하나님처럼 되리라!"는 마귀의 유혹처럼 오늘날에도 사단은 하나님의 뜻을 떠난 삶에서 행복을 찾으려고 한다. 요즘 유행하는 인본주의는 인간이 곧 신이라는 범신론과 만유재신론이다.

물론 성경은 행복을 추구하는 것을 정죄하지 않는다. 문제는 행복의 기준을 왜곡하는 의도에 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하실 때 복된 상태로 창조하셨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의 조명과 역사를 통하여 우리의 삶이 하나님 중심이 될 때 진짜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아담의 타락 이후 사람들은 타락한 이성과 본성에 따라서 하나님이 아니라 내가 중심이 될 때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니다. 이러한 사상을 따르는 사람들은 결국 불행했으며 그들은 허무주의에 빠지고 말았다. 타락한 인간의 진정한 행복은 행복 자체를 추구하는 것을 멈추고 하나님을 추구해야 한다. 거기에 행복의 답이 있다.

이렇게 인본주의적인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함께 행복해 지자면서 무리를 짓기 시작했다. 마치 바벨탑 사건처럼 그러한 일이 자주 일어난다. 공리주의, 사회주의와 공산주의가 그러하다. 특별히 공산주의자들은 모든 사람들이 행복하기 위하여 부자의 소유를 뺏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뺏기는 누군가는 불행해 진다.

또 모두의 행복을 위해 부자들의 소유를 빼앗아 골고루 나누면 다수가 행복해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부자의 것을 다 빼앗으면 더 이상 빼앗을 부자가 사라지게 된다. 그리하여 공산주의는 결국 모두가 가난해지고 만다. 평등하기 위해서 서로 빼앗다보면 결국 빼앗을 자원이 사라지고 모두가 평등하게 가난해 진다.

러셀커크는 자연 상태에서 인간은 평등할 수 없다고 말했다. 사람의 키, 몸무게, 얼굴이 모두 똑같나? 재능이 다 똑같나? 다 다르다. 사람은 이렇게 모든 사람을 다르게 창조하셨다. 주님은 이렇게 서로 다른 모습과 모양으로 만드심으로 서로 돕고 돌보도록 만드셨다. 그리하여 서로가 섬기고 양보하고 희생할 때 비로소 함께 행복해 질 수 있다.

"이는 다른 사람들은 평안하게 하고 너희는 곤고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요 균등하게 하려 함이니 이제 너희의 넉넉한 것으로 그들의 부족한 것을 보충함은 후에 그들의 넉넉한 것으로 너희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여 균등하게 함이라(고후 8:13-14)."

바울의 가르침은 공산주의나 사회주의 가르침이 아니다. 이는 사유재산을 인정하고 있다는 점과 분배의 주체가 정부가 아니라 성령의 감동과 사랑이라는 점에서 공산주의나 사회주의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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