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판 세계은행, 세계경제발전보고서에서 이승만의 토지개혁 사례가 소개됐다. 각 나라의 경제가 발전하는 이유를 추적해보니 농지개혁의 성공여부에 달린 것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농민들이 자기 땅을 갖고 열심히 일하니까 열심히 일한 만큼 소득이 발생하니 더 열심히 일을 하게 되는 것이다. 북한 같은 나라는 열심히 일할 이유가 없다. 열심히 일 해봤자 공산당이 다 가져갈 것이 아닌가? 20세기에 경제가 가장 발전할 수 있었던 근본에는 이승만의 농지개혁이 있었다.
이 개혁이 얼마나 사람을 사람답게 만들었는지 모른다. 이 농지개혁이 시행되기 전에 한 양반집 자녀가 할머니 손에 이끌려 마을 뒷산에 올라갔다. 할머니가 눈에 보이는 모든 땅들, 눈에 보이지 않는 산 넘어서 있는 땅까지 가리키면서 이 모든 땅이 “네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의 집에는 밥하는 하녀, 반찬 만드는 하녀, 청소하는 하녀, 식구들이 일어나면 세숫물 떠다주고 목욕시켜 주는 하인들이 몇 십 명이 있었다.
그런데 이 아이가 어느 날 옆집에 사는 상놈의 자식과 함께 나이가 비슷하니까 서로 친구라고 부르면서 놀았다. 그런데 할머니가 그 모습을 보고 이 손자를 데려다가 회초리를 때렸다. 상놈 자식이랑 놀면 버릇 나빠진다고...다음 날 양반집 자식이 어제 친구라고 같이 놀았던 상놈의 자식을 만나니, 그 아이가 “도련님 나오셨습니까?”라면서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고 한다. 얼굴을 보니 눈이 부어있었다고 한다. 양반 집 자제 분이 회초리를 맞았으니 상놈의 자식은 더 얻어터진 것이다.
이것이 당시 신분제의 실상이었다. 그는 6살 꼬마 시절에 이 읽을 겪고 나서 이것이 옳지 않은 것임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토지개혁이 일어나고 나서, 할머니와 아버지가 통곡을 하면서 우는 모습을 보게 된다. 어느 날 아침 이 아이가 밖에 나갔더니 평소에는 자기에게 “도련님 나오셨어요.”라고 인사하던 나이든 사람들이 자신을 쳐다보지도 않는 것을 보게 되었다.
머슴이었던 사람이 토지개혁으로 자기 땅을 갖게 되자, 비가 와도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고 한다. 내 땅에 누워 있으니 비를 맞아도 행복했다고 한다. 머슴이었던 아버지가 임종 전 마지막으로 자식들의 부축을 받아 자기 땅으로 가서 자식들에게 이 땅을 꼭 지켜달라고 부탁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서 편찬한 농지개혁자 연구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의 저자인 김성호 씨가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들었던 말이 있다. "이승만 박사 덕분에 우리 식구가 처음으로 쌀밥을 먹을 수 있었다." 5,000년간 농민들이 처음으로 겪어본 일이었다. 보리고개의 역사가 5,000년이었다. 평생을 논에서 일해도 쌀밥을 먹지 못했던 농민들이 쌀밥을 먹게 되었던 것이다. - 이호목사.
사실 미군정이 해방 후에 남한에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세우기 위하여 가장 시급한 것으로 제시한 것이 농지개혁이었다. 농지개혁 없이는 결코 양반과 상놈, 지주와 소작농의 신분제가 혁파되지 못함으로 진정한 자유민주주의가 실현될 수 없음을 간파한 것이었다. 그러나 당시 미군정의 지지세력이 되는 지주들의 반대와 반발로 미완의 개혁으로 마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승만은 지주세력을 중심으로 형성된 한민당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농민들과 연합하여 낙선운동을 무기 삼아서 농지개혁을 완수하게 된다. 이것이 5,000년간 2%도 안되는 양반을 위하여 98%의 백성을 소작농으로 묶어 놓았던 반상의 질서를 허물어서 양반과 상놈으로 구분되는 세상이 아니라 모두가 평등한 민주주의 국가의 초석을 놓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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