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성경묵상/마태복음 묵상

마태복음 기록목적

by I am a sojourner. 2024. 2. 2.
728x90
SMALL

(마태복음 1:1) 1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이제부터 마태복음을 공부하려고 합니다. 오늘은 먼저 마태복음의 기록목적과 마태가 설명하는 주님의 신분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마태복음의 기록목적입니다. 마태는 예수님의 12제자 중의 하나였습니다. 세리 출신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에는 수많은 사람이 예수님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점점 지나면서 예수님의 행적이나 말씀을 기억하는 사람의 수가 점점 감소하겠죠? 그뿐만 아니라 교회는 유대인들과 로마 정부의 핍박 속에서도 복음을 지키며 전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외부적인 위협에 노출된 교회가 내부적으로도 많은 문제가 속출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유대주의자들과 함께 영지주의자들이 교회 안에 들어와서 복음을 왜곡하고 있었습니다. 특별히 유대주의자들은 이방인 신자들에게 할례와 함께 율법을 준수할 것을 요구하였죠? 이렇게 교회가 내적으로 외적으로 어려움을 당하고 있을 때,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좋은 해법이 무엇일까요? 바로 주님의 가르침을 상기시켜주는 일이었습니다. 주께서 행하시고 가르치신 말씀을 기록함으로 그들의 신앙을 바르게 잡아주는 일이 요구되었죠? 그래서 가장 먼저 마가가 예수님의 행적과 가르침을 간략하게 소개하는 복음서를 작성했습니다. 그 다음에 마태와 누가가 작성했죠? 마지막으로 요한이 주님의 가르침을 상세하게 기록한 요한복음을 기록했습니다.

 

이렇게 사도들이 주님의 행하심과 가르침을 상세하게 기록해 줌으로 초대교회 신자들뿐 아니라 그 이후의 세대들도 주님의 행적과 가르침을 마치 현장에서 지켜보는 것처럼 배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특별히 마태는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은 구약 성경이 증거하는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일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이 복음서를 기록했습니다. 이 복음서를 마치는 마지막 28:19, 20에서 주께서 분부한 모든 것을 모든 족속에게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주님의 말씀을 기록함으로 우리가 가르쳐 지키게 해야 하는 내용이 이 복음서에 기록되었음을 암시해 주었습니다.

 

주님의 제자를 삼으려면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알려줘야 합니다. 예수님의 모든 가르침을 지키도록 하려면 예수님의 가르침이 무엇인지 알려줘야 합니다. 마태는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알려주기 위하여 주님의 행적과 가르침을 이 복음서를 통하여 소개해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복음서의 내용은 우리 모두 배워야 할 내용입니다. 바르게 이해하고 또 가르쳐야 할 내용입니다. 그 내용의 핵심은 바로 예수님이 구약 성경이 조명하는 그리스도라는 사실입니다.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이 모든 율법과 예언의 성취라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 복음은 유대인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모든 민족에게 전파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해주고 있습니다. 마태는 이 목적을 가지고 이 복음서를 기록하였습니다.

 

두 번째, 예수님의 신분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마태는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는 표현으로 시작됩니다. 여기서 세계로 번역된 헬라어는 기원, 역사라는 뜻을 가진 단어입니다. 헬라어 원문에서 1절은 이렇게 번역됩니다. “예수 그리스도 다윗의 자손 아브라함의 자손의 역사의 책.”  따라서 1절은 이 복음서의 제목을 알려줍니다. 앞으로 이 책이 무엇을 말해줄 것인지 전체의 내용을 가늠하게 해줍니다.

 

마태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라는 말은 메시아라는 말과 동의어라고 했죠? 그리스도는 헬라어, 메시아는 히브리어입니다. 둘 다 똑같은 말입니다. 마태는 예수님을 아브라함의 자손과 다윗의 자손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순서로 따진다면 다윗의 자손이라는 표현을 먼저 사용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에게 다윗의 자손이란 호칭은 메시아를 가리키는 호칭으로 이해하고 있었습니다(마태복음 9:27; 15:22; 20:30,31; 21:9, 마가복음 10:47, 48...). 주께서 다윗에게 메시아를 보내주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무엘하 7:16입니다. “네 집과 네 나라가 네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하라.” 이 말씀을 문자 그대로 적용하면 다윗의 나라, 이스라엘은 영원히 보전되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다윗의 뒤를 이은 왕들이 지금까지 이스라엘을 통치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었나요? 아니죠? 솔로몬 사후에 남북 왕조로 분열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북왕국은 얼마가지 못하고 주전 722년에 앗시리아에 의해서 멸망하고 말았죠? 남왕국도 주전 586년에 바벨론에 의해서 멸망한 뒤 포로로 다 끌려가고 말았습니다.

 

물론 페르시아의 고레스에 의해서 귀환하기는 하죠? 그러나 독립국가를 세우지는 못했습니다. 계속 페르시아, 헬라, 로마제국의 식민통치 하에 있었습니다. 따라서 이 말씀은 다윗의 뒤를 이은 왕들에게 적용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누구에게 적용될까요? 그리스도를 통해서 세워질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대한 약속이었습니다. 따라서 다윗의 자손은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말이었습니다.

 

마태는 예수님을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오셨다는 사실을 함께 강조해 주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말은 창세기 123절과 2218절에 기록된 약속을 상기해 줍니다. 창세기 12:3에서 주님은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22:18에서는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라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이 약속들은 동일하게 메시아로 오실 예수님의 구속 사역을 조명해 주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대속 죽음을 통하여 모든 민족이 구원의 복을 받게 된다는 약속입니다.

 

마태는 이 복음서를 소개하면서 예수님의 신분을 언약의 관점에서 제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아브라함과 다윗에게 주신 언약의 성취로 오신 메시아, 그리스도였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성령의 역사로 잉태되어 동정녀의 몸에서 나셨기 때문에 엄밀하게 따지면 육체적으로는 아브라함이나 다윗의 육적 후손이 아니시죠? 우리의 시각에서는 이 부분이 문제가 될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다윗의 혈통인 요셉의 아들로 오셨기 때문에 법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만일 이 부분이 문제가 되었다면 굳이 이런 문제가 될 말한 내용으로 복음서를 시작하지 않았겠죠? 유대인들의 시각에서 이 족보는 예수님이 다윗의 왕위를 잇는 합법적인 메시아라는 사실을 강조해 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주님은 어떤 메시아로 오셨습니까? 당시 유대인들이 기대하는 메시아는 당연히 다윗과 같은 군사적인 메시아였습니다. 그러나 과연 주님이 다윗과 같이 군사적인 정복을 통하여 이스라엘을 막강한 나라로 만드는 메시아로 오셨습니까? 아닙니다. 마태는 이 사실을 아주 중요하게 다룹니다.

 

마태는 산상수훈이나 천국의 비유(마태복음 13, 25)를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결코 이 땅 위에 세워지는 물리적인 나라가 아니라는 사실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은 주여, 주여!”라고 주님을 부르는 사람들이나 육적인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니라는 사실을 반복해서 강조해 주셨습니다.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들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나무는 잎이 아닌 열매로 알 수 있다는 말씀을 통해서도 주님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은 열매를 통해서 알 수 있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25:1-13에 있는 열 처녀 비유에서는 주의 재림을 준비하여 깨어 있으라고 말씀하셨죠? 깨어 있는 자들이 주인의 잔치에 참여할 수 있다고 하셨죠? 깨어 있음이 주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자들이 맺는 열매입니다. 이어지는 달란트의 비유와 양과 염소의 비유를 통하여 깨어 있는 삶, 주님의 재림과 심판을 준비하는 삶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밝혀주셨습니다.

 

달란트의 비유에서는 맡겨주신 일에 충성하는 자세가 깨어 있음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렇게 충성된 자들이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 수 있다고 하심으로써 주님의 백성이 맺는 열매는 충성이라고 교훈하셨죠? 곧바로 이어지는 양과 염소의 비유에서는 어떻게 설명하셨습니까? 지극히 작은 자들을 돌보는 열매를 맺어야 한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지극히 작은 자들이 주릴 때 먹이고, 목마를 때 마시게 하고, 나그네 되었을 때 영접하고, 헐벗었을 때 입히고, 병들었을 때나 옥에 갇혔을 때에 찾아가는 것이 열매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러한 교훈들은 주님의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선명하게 드러내 주셨습니다. 이렇게 열매를 맺는 사람들이 들어가는 나라입니다. 이는 입술로만 주여, 주여!”하던 유대인들에게 충격적인 선언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 할례를 가진 선민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던 유대인들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가르침이었습니다.

 

이러한 주님의 가르침을 보았을 때 주님이 어떤 메시아인지 알 수 있겠죠? 유대인들이 기대하던 군사적인 메시아, 정치적인 메시아가 아닙니다. 죄악 된 본성이 해결되지 않는 한 어떤 사람도 이런 열매를 맺을 수가 없습니다. 주님은 이 인간의 근본문제를 해결하러 오신 메시아이십니다. 이것이 우리가 모든 족속에게 가서 가르쳐야 할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이 복음이 어떻게 왜곡되어 버렸습니까? 죄 문제를 해결함으로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열매를 맺게 하시는 그리스도를 현실문제 해결자로 바라보게 하고 있습니다. 이는 주께서 배격하신 유대교적 메시아 관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잘못된 가르침으로 많은 교회가 부흥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과연 참된 부흥일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진정한 부흥은 그렇게 왜곡된 복음을 통해서는 일어날 수 없습니다. 그런 유사 복음은 나뭇잎만 무성하게 만들 뿐입니다. 주님은 무성한 나뭇잎을 부흥으로 규정하지 않으셨습니다. 나뭇 잎의 목적도 열매에 있습니다. 열매가 없는 나뭇잎은 다 거품에 불과합니다. 돌밭과 가시떨기에 떨어진 씨앗처럼 말씀을 들을 때는 기쁨으로 받아들여도 박해나 세상적인 근심과 재리의 유혹이 올 때 금방 죽어버리고 맙니다. 잠깐 들불처럼 일어나지만 결국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복음이 바르게 선포되고 그 복음을 받아들임으로 주 앞에 나온 사람들은 그 모든 어려움을 인내하면서 30, 60, 100배의 결심을 맺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복음을 전해야 할까요? 결국 열매를 맺을 수 없는 유사 복음을 전해야 할까요? 영적으로 죽은 죄인들에게 생명을 주는 복음을 전해야 하겠죠? 그들이 이 복음을 통하여 변화되어 주님의 나라에 충성된 일꾼, 지극히 작은 자들을 돌보는 열매를 맺는 진실한 주님의 나라의 백성으로 세워가는 바른 복음, 바른 메시아관을 심어주는 교회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마태복음을 통하여 이 바른 복음을 배우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 몇 년전부터 정주행이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드라마를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도 빠짐없이 시청할 때 정주행이라는 말을 씁니다. 우리도 마태복음을 정주행해야 하겠죠? 그리고 이 귀한 복음을 나 혼자 듣는 것이 아니라 다른 성도들도 함께 들을 수 있도록 권면해서 나오시길 바랍니다.

 

 

마태복음의 목적은 예수님이 구약 성경에 약속된 메시아라는 사실을 조명하기 위하여 이 복음서를 기록했습니다. 이 사실을 조명함으로 모든 민족에게 가르쳐야 할 복음을 제시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마태가 소개하는 예수님의 신분, 구약 성경에 약속된 메시아는 어떤 메시아입니까? 죄 문제를 해결함으로 열매 맺는 백성을 일으키시는 메시아입니다. 이 복음이 조금만 왜곡되어도 열매에는 관심 없이 현실문제 해결만 추구하는 가짜 신자가 폭발적으로 양산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르게 증거 되면 삼십 배, 육십 배, 백배의 결실을 맺는 참된 주님의 백성들이 세워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마태복음 공부에 빠지지 말고 참석해 주시길 바랍니다.

728x90
LIST

'성경묵상 > 마태복음 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팔복(3) 애통하는 자  (0) 2024.03.13
팔복(2) 심령의 가난함  (1) 2024.02.26
팔복 (1) 신자의 행복  (0) 2024.02.26
예수님의 족보 요약(2)  (3) 2024.02.10
마태복음의 족보  (3) 2024.0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