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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묵상/성막과 제사

성경의 5대 제사(2) 소제

by I am a sojourner. 2024. 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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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위기 2:1-7 

 

1 누구든지 소제의 예물을 여호와께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로 예물을 삼아 그 위에 기름을 붓고 또 그 위에 유향을 놓아 2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에게로 가져 올 것이요 제사장은 그 고운 기름 가루 한 줌과 그 모든 유향을 취하여 기념물로 단 위에 불사를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3 그 소제물의 남은 것은 아론과 그 자손에게 돌릴지니 이는 여호와의 화제 중에 지극히 거룩한 것이니라 4 네가 화덕에 구운 것으로 소제의 예물을 드리려거든 고운가루에 기름을 섞어 만든 무교병이나 기름을 바른 무교병을 드릴 것이요 5 번철에 부친 것으로 소제의 예물을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에 누룩을 넣지 말고 기름을 섞어 6 조각으로 나누고 그 위에 기름을 부을지니 이는 소제니라 7 네가 솥에 삶은 것으로 소제를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와 기름을 섞어 만들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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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제는 동물의 피 없이 곡식을 가루로 만들어 드리는 제사다. 소제는 날 것이나 익혀서 드릴 수 있었다. 날 것으로 드릴 때는 고운 가루에 기름을 붓고 유향을 첨가하여 드려야 했다. 제사장은 그 가루를 단 위에 태워서 주님께 드렸다. 구운 것으로 예물을 드릴 때는 고운 가루에 기름을 섞어 만든 무교병이나 기름을 바른 무교병으로, 번철에 부친 경우에는 고운 가루에 누룩 없이 기름을 섞어 조각으로 나누고 기름을 부은 제물로, 솥에 삶고자 한다면 고운 가루에 기름을 섞어서 드려야 했다.

 

 

<이미지출처 :http://www.marcheat.net/season/%EB%B0%80%EB%B3%B4%EB%A6%AC/>

 

 어떤 형태의 경우든 날 것이나 익힌 것이나 우선 곡식을 고운 가루로 만들어야 했다. 왜 고운 가루로 만들어야 했을까? 영적 해석을 피하면서 최대한 본문 중심에서 생각해 보면, 곡식이 고운 가루로 완전히 빻아지면 그 본래의 형태는 사라져도 곡식 고유의 맛은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이렇게 완전한 가루가 되면 제물을 드리는 사람이 날 것으로 드리든, 익혀서 드리든 주님께서 받으시는 제물이 될 수가 있다.

 

 그러나 완전한 가루가 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그것으로 무교병을 만들거나, 번철에 부치거나 솥에 삶을 수 있을까? 완전한 가루가 되지 않는 곡식은 주님께서 원하시는 형태의 제물이 될 수 없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과 헌신을 생각해 보라. 주님은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인간의 몸을 취하시고 종의 모습으로 오셨다. 영광과 권능과 능력이 충만하신 하나님의 아들의 위엄 있는 모습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실 수 있는 종의 모습으로 오셨다. 인성을 취하신 주님의 모습은 인간을 위한 죄를 대속할 수 있는 최적의 형태였다. 주님이 인성을 취하지 않으셨다면 어떻게 인간의 죄를 대속하는 제물이 되실 수 있으셨을까? 따라서 성육신과 종의 모습은 아버지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었다.

 

 바울은 빌립보서 2:5에서 이러한 그리스도의 마음을 닮으라고 명령했다. 헬라어 원문에서 이 단어는 마음과 함께 어떤 성향을 가진이라는 의미를 함께 갖고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영역본은 두 번째 의미를 살려서 태도(Attitude)로 번역하였다. 어떤 의미를 취하든 우리는 그리스도와 같이 자신을 낮추어 순종하는 마음과 성향, 태도를 보여야 한다. 이렇게 자신을 완전히 낮춰서 섬기는 종의 자세를 가질 때 우리 역시 완전히 빻아진 곡식 가루처럼 주께서 원하시는 도구의 모습으로 빚어질 수 있다.

 

 만약에 자신을 완전히 낮추지 않거나, 조금이라도 자신의 본래의 형태를 유지하기 위하려 조금이라도 덜 부서져 완전한 가루가 아닌 덩어리의 형태가 남아 있다면 주께서 원하시는 대로 빚어서 사용하실 수가 없다.

 

 주님은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다루실까? 당신은 모세가 40세가 되었을 때 자기 동족에게 갔던 일을 기억하나? 사도행전 7:23, 25에서 스데반은 이러한 모세의 행동 동기가 어디에 있었는지 말해준다. “(23) 나이 사십이 되매 그 형제 이스라엘 자손을 돌아볼 생각이 나더니 (25) 저는 그 형제들이 하나님께서 자기의 손을 빌어 구원하여 주시는 것을 깨달으리라고 생각하였으나 저희가 깨닫지 못하였더라.”

 

 모세는 40년간 바로의 궁전에서 애굽 사람의 모든 학문을 다 배우고 말과 행사가 다 능한 사람이었다. 그는 자기 민족을 구원해야겠다는 사명감에 불타오르고 있었다. 그래서 자기 동족의 억울한 일을 해결해 주기 위하여 애굽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였다. 그는 이렇게 애굽 왕자라는 명예를 완전히 버렸다. 그러나 주님 보시기에는 완전한 가루가 아니었다. 의욕과 혈기만 앞세우는 덩어리로 가득한 상태에 불과했다. 그래서 주님은 그를 완전한 가루로 만드시기 위하여 광야에서 40년이란 훈련의 시간을 보내게 하신다.

 

 그가 얼마큼 가루가 되었을까? 주께서 그를 출애굽의 도구로 부르시자, 그는 자신은 말도 못 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능력한 사람이라면서 다른 사람을 보내셔야 한다고 대답할 정도였다. 바로 이 모습이 주께서 사용하실 수 있는 완전한 가루의 모습이었다. 그가 이렇게 가루가 되자 위대한 출애굽의 도구로 쓰일 수 있었다.

 

 당신은 어떠한가? 완전한 가루의 상태인가? 아직도 덩어리들이 많이 남아 있는 상태인가? 주께서 당신을 쓰시고자 하는 일에 군소리 없이, 원망이나 불평 없이 자신을 바치고 있나? 도살장에 끌려가는 양이나 털 깎는 자 앞에서도 소리를 내지 않은 양과 같이 잠잠하셨던 주님처럼 그렇게 주께서 맡기신 일에만 전념하는 모습을 가지고 있나? 자신을 진단해 보라. 주님께 바쳐지는 삶, 주님의 도구가 되고 싶은가? 덩어리가 아닌 완전한 가루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주님처럼 완전히 자신을 낮추고 순종하기를 연습하라.

 

 2. 소제를 드리는 자가 첫 번째로 지켜야 할 규정은 곡식을 완전히 빻아서 고운 가루로 만드는 일이었다.  두 번째 규정은 기름을 섞는 일이다. 곡식을 굽거나 전을 부치거나 삶은 것으로 드리거나 반드시 기름을 섞어야 했다. 왜 기름을 섞으라고 명령하셨을까? 고운 가루만으로 어떤 모양도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물이나 기름이나 액체가 고운 가루에 더해질 때만 어떤 모양이든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고운 가루에 기름이 더해질 때 비로소 무교병의 형태든, 번철에 부치기 편한 조각의 형태든, 솥에 삶을 수 있는 형태든 만들 수 있다. 그냥 가루만으로는 무교병이라는 떡을 만들 수가 없다. 가루만으로는 조각을 나눌 수도 없고 솥에 삶을 수 있는 모양도 만들 수 없다. 이렇게 주께서 정하신 규율대로 정해진 형태를 가진 제물만 주님이 받아 주셨다. , 아무리 곱게 빻은 가루여도 기름이 섞여서 일정한 모양을 가진 것만 주님께서 받으시는 제물이 될 수 있었다.

 

 이처럼 한 신앙인이 자신을 완전히 낮추었다고 해도 제물이 되기 위해서는 주께서 원하는 형태로 빚어져야만 한다. 아무리 엄청난 열정과 헌신의 자세가 되어 있어도 주께서 원하시는 형태가 없으면 주께서 사용하실 수가 없다.

 

  모세는 애굽의 왕자로서 애굽의 학문과 말과 능력에 출중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 형태는 주께서 사용하실 수 없는 모습이었다. 그래서 주님은 광야에서 이스라엘을 이끌 수 있는 목자의 형태로 그를 바꾸신다. 양을 치던 그의 지팡이는 하나님의 지팡이가 되어 하나님의 양 떼를 이끌고 지도하는 지팡이가 되지 않았던가?

 

 바울은 유대교에 대단한 열정을 가지고 하나님의 나라를 바르게 세우려는 목표를 가진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의 모든 열심은 바울 자신의 의로움으로 계산되어 자신을 높이는 소재로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남으로 자신의 모든 열정과 헌신이 주님을 대적하는 행위였음을 깨닫게 된 순간 그는 완전히 가루가 되어 버린다.

 

 그리하여 그는 주께서 창세 전부터 갖고 계셨던 이방인의 구원을 위한 도구로 빚어진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목표와 계획이 아닌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르게 된다. 물론 그는 2차 전도 여행 때 유럽으로 그를 인도하시려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깨닫지 못하고 자신의 계획과 일정을 따라 소아시아에서 계속 복음을 전하려고 했다. 그러다가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고 말하는 마게도냐인의 환상을 본 후에 비로소 주님의 인도하심이 유럽으로 향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드로아에서 배를 타고 에게해를 건너 마게도냐 지방으로 건너감으로 드디어 복음이 유럽에 전파되는 발판을 마련하게 된다. 그의 3차 전도여행과 예루살렘에서 체포되어 로마로 호송되는 여정은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복음이 이방 지역에 전파되는 과정이었다.

 

 예수님의 열두 사도들도 생각해 보라. 그들은 열심당원, 세리, 어부들에 불과한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님을 따르면서 헛된 기대감에 빠지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은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어 땅끝까지 가서 주의 복음을 전하는 도구들이 되었다. 이는 그들의 계획이 아닌 주님의 계획을 따른 일이었다.

 

 모세, 바울, 예수님의 열두 사도, 모두가 주님의 계획을 따라서 주께서 원하시는 형태로 빚어져서 주님의 나라를 위하여 쓰임 받을 수 있었다. 당신도 주님의 나라를 위하여 쓰임 받고 싶은가? 그렇다면 완전히 부서져 가루가 된 후에 당신의 모든 것을 주님께 의탁하고 맡기라. 자신을 완전히 낮춰서 가루가 된 후에 종처럼 주인이 사용하시겠다는 일에 기꺼이 자신을 내어드려라.

 

 마치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에 어떤 형태로 빚어지든 자신을 완전히 맡긴 것처럼 그렇게 자신을 완전히 주님께 맡기라. 그리고 주께서 빚어주신 그 모습, 그 형태 그대로 주님의 나라와 영광을 드러내는 도구가 되라. 주께서 당신을 빚어주신 그 모습이 주님의 선하신 계획임을 인정하고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도구가 될 수 있도록 늘 내주하시는 성령의 도우심을 의지하는 삶을 살길 바란다.

 

->나의 적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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