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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묵상/마태복음 묵상

팔복(9)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의 복

by I am a sojourner. 2024. 3.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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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11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의를 위하여 받는 핍박은 팔복의 마지막 복이자, 결론적인 내용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로 핍박을 받는 것이 왜 복인지, 두 번째로 핍박을 대하는 자세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핍박이 어떻게 복이 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음이 복된 이유가 심령의 가난함이 복인 이유와 똑같이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입니다. 이는 결코 의를 위한 핍박을 받음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조건이라는 말은 아닙니다. 천국에 들어간 사람의 삶의 특징이 의를 위한 핍박이라는 말입니다. 천국 백성은 기꺼이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다는 말입니다.

 

왜 천국 백성이 의를 위한 핍박을 받게 될까요? 주께서 앞서 설명하신 심령의 가난함과 애통함을 가진 사람, 온유함과 의에 주리고 목마름을 갖고, 긍휼히 여기며, 청결한 마음으로 화평케 하는 사람은 모든 기쁨과 복, 삶의 의미와 가치를 주님의 은혜 안에서만 찾는 사람입니다. 심령이 가난하고 애통한 자는 오직 주님의 은혜만을 의지합니다. 그리고 온유한 마음으로 형제들을 돌아봅니다. 자기 안에는 주님 앞에 내세울 만한 의로움이 전혀 없기에 오직 그리스도의 대속 공로만을 의지하며,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풉니다. 자기 의가 아니라 주님의 대속공로만을 의지하여 주님 앞에 나가며, 그 주님의 은혜를 증거 함으로 화평케 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러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공로와 이 대속 공로를 의지할 수 있도록 자신에게 베풀어진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이러한 복들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며 살게 됩니다. 이런 가치관을 가지고 사는 사람을 과연 세상 사람들이 좋아할까요? 물론 우러러보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히려 이들을 핍박합니다. 왜냐하면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인생의 의미와 가치, 목적이 너무 다르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부자가 되고 형통하고 성공하는 것에 인생의 의미와 가치를 두며, 그것을 목표로 살아갑니다. 그것을 성취했느냐에 따라서 인생의 성공 여부, 행복 여부를 판단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 목표를 위하여 다른 사람들을 밟고 올라가야 합니다. 때로는 정상적인 방법이 아니라 비정상적인 길을 택할 때도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그렇게 살아가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팔복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며 추구하는 그리스도인들이야말로 그런 것들과는 구별된 삶을 살아가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의 조롱과 핍박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그러한 삶을 살고 있는 인생들을 향하여, 그런 헛된 것을 추구할 것이 아니라 영원한 것을 추구하라고 말하니, 그들이 좋아할 리가 없겠죠? 죄악 된 본성을 추구하는 사람에게 복음 선포는 결코 반가운 일이 아닙니다. 그들이 추구하는 것을 죄로 규정하여 돌이킴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의 가치를 따라서 살았던 그리스도인들은 모두가 핍박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서 다니엘과 세 친구를 생각해 보십시오. 만일 이들의 목표와 가치가 성공에 있었다면, 이들은 왕의 진미를 거부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왕의 금 신상에 절하는 것도 거부하지 않았으며, 다니엘은 사자 굴에 들어갈 것을 각오하고 주님께 기도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들의 목표와 가치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구별됨을 지키는 데 있었기 때문에, 왕의 진미를 거부했고, 7배나 뜨거운 풀무 불에 들어갈 것을 알고도 금 신상에 절하기를 거부했고, 사자 굴에 들어갈 것을 알고도 주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렇게 구별됨을 지켰기 때문에 이들은 주님만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드러내는 도구로 쓰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모르드개 역시 출세보다는 구별됨에 더 무게를 두었기 때문에 그를 포함한 모든 유대인이 하만의 핍박의 대상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보았을 때 8번째 복은 팔복의 결론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따라 그의 가치관이 변화되어서 주께서 말씀하신 복을 목표로 삼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주께서 가르쳐주신 복을 버리면 세상의 핍박을 피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고 주께서 우리를 구원하여 주신 은혜에 감사하며, 그 은혜를 의지하여 세상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며 주 앞에 인도하기 위하여 늘 복음을 전하니, 세상은 우리를 미워하고 핍박하며, 11절 말씀대로 거짓으로 우리를 모함하기까지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핍박이야말로 우리가 주님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가 됩니다. 그래서 의를 위하여 받는 핍박이 복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주님도 우리가 이런 핍박을 받을 때 하늘에서 주어질 상이 크며, 우리 앞서 있던 선지자들이 받았던 것이라고 말씀하심으로써 핍박을 받는 것은 주님이 인정하시는 신앙으로, 선지자들의 발자취를 따르는 것임을 교훈해 주셨습니다. 신앙의 선배들의 발자취를 따르려면 핍박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주께서 바울 사도를 통하여 디모데에게 이렇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무릇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피할 수 없느니라.”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사람, 주님의 말씀을 따라 변화된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은 이 핍박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주의 말씀을 따라 변화되었다면, 우리는 이 세상에서 미움과 핍박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관과 그들이 추구하는 바가 충돌하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핍박을 대하는 자세를 살펴보겠습니다. 이런 가치관과 삶의 목적을 가진 사람은 핍박을 어떤 자세로 대할까요? 피하려고 할까요? 핍박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타협하면 됩니다. 그들과 함께 섞여서 복음을 왜곡하면 됩니다. 그들이 듣기 좋은 말을 해주면 됩니다.

 

그러나 어떻게 우리의 편리를 위하여 신앙을 부인할 수 있을까요?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거듭나서 새로운 존재가 되었기 때문에 그들의 새로운 가치관과 삶의 목적 때문에 그렇게 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습니다. 그들은 핍박을 피하기보다는 주께서 말씀하신 대로 이 핍박 속에서도 즐거워합니다.

어떻게 핍박 속에서 즐거워할 수 있을까요? 12절을 보시면, 하늘에서 상이 크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우리 앞서 있던 선지자들이 이렇게 핍박을 받았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하늘에서 받게 될 상에 대해서는 사도 바울이 면류관으로 표현을 했습니다. 면류관은 누구에게 주어지나요? 완주한 사람에게 주어집니다. 따라서 바울이 바라본 면류관은 믿음의 길을 완주한 자신에게 주어질 상이었습니다.

따라서 주께서 말씀하신 하늘의 상이 크다는 표현이나 선지자들이 이런 핍박을 받았다는 말씀은 공통적으로 핍박을 통하여 우리가 성경적인 신앙인의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을 객관적으로 확인하게 해주는 매체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즉, 우리가 이 길을 계속 걷다보면 선지자들처럼 주님의 나라에 가게 된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지금 걷고 있는 길이 주님이 인정하신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이 우리의 감정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요?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을까요? 아니죠? 우리에게 큰 위로와 기쁨과 즐거움을 줍니다. 세상은 우리를 미워하고 핍박하지만 주님만큼은 우리를 인정해 주신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5장을 보시면, 사도들이 체포되어 태형과 함께 위협을 받으며 석방됩니다. 그런데 석방되면서 그들이 어떤 모습을 보여준지 아세요? 사도행전 5:41입니다.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사도들은 기뻐했습니다. 왜요?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을 받는 일이 두려움의 소재가 아니라 기쁨의 소재였습니다. 자신들이 주님께서 명하신 그 길위에 서 있음을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더하여 베드로전서 1장에서도 초대교회 교인들의 반응을 보여줍니다. (6)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7)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8)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9)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초대교회 교인들이 유대인들과 로마 정부로부터 극심한 핍박을 받았을 때, 그들도 근심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곧 크게 기뻐했다고 합니다.

 

어떻게 기뻐할 수 있었을까요? 그 핍박을 믿음의 시련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마치 금을 제련하는 용광로의 불처럼 그들 안에 있는 모든 불순물을 제거하여 그리스도 앞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받게 하기 위한 것으로 보았습니다. 그러니 그 시련의 고통은 힘들었으나 자신들의 신앙을 연단하는 과정으로 보고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베드로는 이것이 바로 그들이 구원받은 증거라는 사실을 말해주었습니다. 그들의 구원의 완성을 바라보면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했다고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구별성 때문에 이 세상으로부터 미움과 시기, 모함 등 여러 가지 형태의 핍박을 받게 됩니다. 그 핍박은 우리로 하여금 주님을 더욱 의지하게 합니다. 빌4:12,13의 바울의 고백을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바울은 모든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는데, 바로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것이었습니다.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말씀은 바로 여기에 적용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속에서 무엇인가 성취하고 싶은 일은 있는데, 할 수 없을 때 적용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구별성을 지키고, 이 세상에서 복음 때문에 겪는 어려움들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이 그리스도 안에 있음을 교훈하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주께서 말씀하신 팔복을 목표와 가치로 삼고 늘 주님을 가까이 하며 그 말씀대로 변화되는 삶을 살기 위하여 노력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세상의 가치관과 충돌함으로 핍박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핍박을 피할 수가 없는 과정입니다. 그러나 이 핍박은 바로 우리가 주께서 인정하시는 신앙인이 되었다는 증표일 뿐 아니라 우리를 연단하는 도구가 됩니다. 따라서 핍박을 인하여 잠시 근심이 되겠지만, 그리스도의 능력을 의지함으로 기쁜 마음으로 이겨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러한 시각에서 보았을 때 의를 위한 핍박은 재앙이 아닌 복입니다. 복이니까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습니다.

 

 

왜 핍박이 복인가요? 우리가 주의 말씀을 따라 변화되었다는 사실을 객관적으로 확인시켜 주는 매체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핍박은 재앙이 아닌 복입니다. 복이니까 당연히 기뻐하고 즐거워하겠죠? 여기에 더하여 핍박은 우리로 오직 그리스도만을 의지하게 만들어 줍니다. 우리를 연단하여 성숙한 신앙인으로 성장시켜 줍니다. 이런 시각에서 볼 때 핍박은 복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기뻐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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